왜 이기적 유전자는 이타적 행동을 하는가?
유전자의 본질은 유전자 풀을 늘리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목적을 가진 것임에도, 생물이라는 유전자 기계가 이타적 행동을 하는 이유는 유전자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마치 컴퓨터 체스 게임 프로그램처럼 미리 정의된 알고리즘 기반의) 프로그래밍 방식을 취한 것이며, 이처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결국 게임이론으로 귀결된다는 점은 제법 솔깃하다.
특히 게임이론의 예로 든, 공격적인 매파와 방어적인 비둘기파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서, 만일 집단선택설이라면 모두가 비둘기파로 진화해야 하므로 모순으로 봉착하는 논리 또한 와닿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타적 행동의 이유가 혈연관계로 확장된 전체 유전자 풀 순이익을 계산한 결과라고 말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따른다. 우리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이유가 단지 <유전자의 본질> 때문이라는 논리는 지나치게 비약적이다. (거부하고 싶다.)
이것은 저자가 애초에 의도한 바로서, 논의 대상을 동물로 국한하면서 그것을 유전자 기계로 표현한 것이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위로는 인간, 아래로는 무생물까지 확대하는데 그 흐름이 반감과 공감을 번갈아 자아낸다. 인간 문화의 밈(meme)을 소재로 얼토당토한 기분마저 들게 하는데, 밈이 유전자와 같아서 문화로 퍼져나가고 신이 되기도 하고 유행어가 된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마치 영혼을 물질로 설명할 때 느껴지는 괴리감만큼이나) 당혹스럽다. 뇌의 유한한 공간에서 더 오래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를 복제하는 meme을 유전자와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는데 이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는 뒤에 나오는 핵심 키워드,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의 예고와도 같은 것인데, 날도래가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돌의 모양을 결정하는 (돌의) 유전자가 있으며 이것은 날도래의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것이다. 꿈같은 소리에 분노하는 사이, 저자는 다시 달팽이집 얘기를 꺼내는데, 하긴 달팽이가 껍질의 두께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날도래의 돌멩이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나의 복잡한 마음을 진정시킨다. 계속해서 기생자와 숙주의 관계, 다시 비버와 비버의 댐, 이것들이 결국 분리된 것들의 유전자 관계, 즉 확장된 표현형임에 쐐기를 박는다.
혼란스럽지만 마냥 거부할 수도 없는 것이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우리의 선입관일 수 있다.
크고 복잡한 어망을 짜는 돌고래종...... 이에 비해, 우리는 거미의 집을 경이로운 것이기보다는 집구석의 귀찮은 것으로 여긴다.
이제야 유전자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그의 의도를 알 것도 같다. 단지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상대성 이론의 시공간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을 테니까. 여전히 왜 유전자는 번식하려는가에 대한 답은 아무도 찾을 수 없지만.
The Extended Phenotype
결국 이 책의 주제인, 확장된 표현형의 중심 정리는
동물의 행동은,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그 행동을 하는 동물의 몸 내부에 있거나 없거나의 상관없이,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의 생존을 극대화하는 경향을 가진다... 나는 여기서 '동물의 행동'에 썼지만 이 정리는 색깔, 크기, 형상 등 어떤 것에나 적용될 수 있다.
유전자를 위해 돌멩이의 모양이 결정된다는 굉장한 결론이자 우리의 직관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이다. 생물의 연장된 기관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 넘어 다른 생물, 심지어는 무생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철학적이고 충격적이다.
과연 이 정리가 오류인지, 아니라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처럼 옳지만 어려우니까 좀 더 직관적인 뉴튼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여주인공 스칼렛의 대사처럼 일단 오늘은 그만 자고 내일 생각해 볼 일이다.
"I can’t think about that right now. If I do I go crazy. I think about that tomorrow."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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