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리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ep.2 - 오데트

오데트는 서운한 마음으로 포르슈빌이 멀어져 가는 걸 보았지만 차마 스완과 함께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마차에 타고 있는 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스완이 그녀 집에 들어가도 좋으냐고 묻자 "물론이죠." 하고 짜증스럽게 어깨를 들먹이며 말했다. - 마르셀 프루스트, ,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141 "안 돼요. 오늘 밤엔 카틀레야가 없어요. 제가 몸이 불편하다는 걸 알잖아요." ...(중략)... 그녀는 돌아가기 전에 불을 꺼 달라고 했다. 그는 손수 침대 커튼을 닫고 집을 나왔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자 갑자기 어쩌면 오데트가 오늘 밤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어 단지 피곤한 척한 것뿐이며, 불을 꺼 달라고 부탁한 것도 실은 그녀가 자려고 한다는 걸 믿게 하려고 그런 것으로, ..

문학/북톡 2023.04.14

[리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ep.1 - 스완

처음 오데트를 만났을 때, 불혹의 나이에 이른 스완에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젊었을 때와 사뭇 다른 것이었다. 단지 사랑한다는 기쁨만으로도 만족할 줄 알고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강요하지 않는 이 불혹의 나이에는, 마음과 마음이 가까워진다는 것이 젊은 시절 막 시작되는 사랑이 지향하는 필수적인 목적은 아니라고 해도, 대신 관념의 강렬한 연상 작용으로 사랑에 결합되어 있으므로, 만일 이 마음의 접근이란 것이 사랑에 앞서 제시되기만 한다면 사랑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예전에는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기를 꿈꾸었지만, 나중에는 여인의 마음을 가진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사랑한다고 여기기에 충분해진다. ...(중략)... 삶의 이런 시기에 이른 사람은 이미 사랑을 여러 번 경험했으며, 따라서 사랑은 더 이상 ..

문학/북톡 2023.01.23

[리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ep.4 - 질베르트

스노비즘을 다룬 르그랑댕 이야기 후 마르셀이 가족들과 산책에 나서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작품 1편의 부제목인 '스완네 집 쪽으로' 난 길과 작품 3편의 부제목인 '게르망트 쪽'으로 난 두 개의 갈림길이 소개된다. 콩브레 주변에서 산책을 하려면 '길'이 두 개 있었는데, 이 두 '길'은 아주 반대 방향에 있어서 (...중략...) 내 소년 시절을 통해 메제글리즈가 이미 더 이상 콩브레 토양과는 닮지 않은 땅의 기복 탓에 멀리 가면 갈수록 시야에서 사라지는 지평선처럼 접근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면, 게르망트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인 것으로, 그 '길'의 종점과도 같은, 적도나 극지방, 혹은 동양처럼 일종의 추상적이고 지리적인 표현이었다. (...중략...) 나는 그 두 길을 서로 다른 두 실체로 간주..

문학/북톡 2022.12.31

[리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ep.3 - 스노비즘

마들렌과 홍차의 추억 속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레오니 아주머니는 남편이 죽은 뒤 마음을 닫고 점차 자기 방에 침대에만 누워있는 특이한 사람인데, 은둔형 외톨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죽을 병에 걸렸다고 단정하고 곧 죽을 듯 침대에만 누워있는 사람이다. 언제나 슬픔과 무기력, 병과 고정관념 그리고 신앙심이 뒤섞인 모호한 상태로 자리에 누운 채, ...(중략)... 아주머니는 항상 낮은 소리로 말했는데, 머릿속에 뭔가 깨어져 떠돌아다니는 것이 있어 너무 큰 소리로 말을 하면 그것이 움직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자주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듣곤 했다. "내가 잠을 자지 않았다는 걸 꼭 기억해야 해." ...(중략)... - 마르셀 프루스트, ,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9..

문학/북톡 2022.12.31

[리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ep.2 - 마르셀의 부모

어머니의 굿나잇 키스를 받으려고 복도에 서 있다가 아버지에게 들키자, 어머니는 마르셀에게 도망가라고 한다. 마르셀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엄마가 마르셀에게 도망치라고 했을까? 아버지는 '원칙' 같은 것에 구애받는 분이 아니셨고, '사람들의 권리'에도 신경을 쓰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에, 어머니와 할머니가 정한 폭넓은 규약 안에서 내게 허락되었던 사항들을 종종 거절하곤 하셨다. 지극히 우발적인 이유나, 또 어떤 때는 아무 이유도 없이, 내가 약속한 것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도저히 금지할 수 없는 그렇게도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산책을, 내가 막 나가려는 순간 금지하거나, 조금 전 아래층에서처럼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전에 "그만 올라가서 자거라. 잔말 말고."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또한 원칙이 없었기 때문에..

문학/북톡 2022.12.17

[리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ep.1 - 기억

십 수년 전, 프루스트의 를 처음 접했을 때, 방대한 양과 길고 어려운 문장들에 지레 겁먹고,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표현하기 힘든 감정에 빠져 마치 중독된 것처럼 몇 달 동안 작품에 빠져있었다. 아니, 읽었다라는 표현보다 체험했다는 말이 좀 더 어울리는데, 상세하게 묘사된 장면들과 사건들이 1인칭 시점으로 펼쳐지는 동안 끊임없이 내적 독백이 겹쳐지면서, 마침내 내가 생각을 하는 것인지 프루스트가 생각을 하는 것인지마저 혼동이 될 정도였다. 쉽게 비유하자면,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나 '아바타'와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체험(혹은 빙의)의 효과는 내가 사는 세계를 잠시 떠나, (소설이지만 너무나도 사실적인) 프루스트의 세계에 머무르다 오는 것만으로 삶에 초연하게 되..

문학/북톡 2022.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