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트는 서운한 마음으로 포르슈빌이 멀어져 가는 걸 보았지만 차마 스완과 함께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마차에 타고 있는 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스완이 그녀 집에 들어가도 좋으냐고 묻자 "물론이죠." 하고 짜증스럽게 어깨를 들먹이며 말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141
"안 돼요. 오늘 밤엔 카틀레야가 없어요. 제가 몸이 불편하다는 걸 알잖아요." ...(중략)... 그녀는 돌아가기 전에 불을 꺼 달라고 했다. 그는 손수 침대 커튼을 닫고 집을 나왔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자 갑자기 어쩌면 오데트가 오늘 밤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어 단지 피곤한 척한 것뿐이며, 불을 꺼 달라고 부탁한 것도 실은 그녀가 자려고 한다는 걸 믿게 하려고 그런 것으로, 그가 그녀 집에서 나오자마자 불을 다시 켜고 그녀 곁에서 밤을 함께 보내기로 한 남자를 맞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그렇게도 많은 밤, 그가 그 길에 들어서면 멀리서도 그를 알아보고는 기쁘게 해 주던 불빛으로 "그녀가 바로 저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하고 알려 줬는데, 지금은 "그녀가 기다리던 남자와 같이 있어요."라고 말하며 그를 고문했다. 스완은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153~154
그러나 곧 그의 질투는 그의 사랑의 그림자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날 밤 그녀가 그에게 보낸 새로운 미소, 그렇지만 지금은 반대로 스완을 비웃고 다른 남자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 흐르는 미소와 기울어진 머리, 그렇지만 지금은 다른 입술들을 향해 기울어진 머리와, 전에 그에게 보여 주었던 애정 표현, 그렇지만 이제는 다른 남자에게 주는 온갖 애정 표현들로 채워졌다. ...(중략)... 그리하여 그는 그녀 곁에서 맛본 쾌락 하나하나를, 자기가 고안해 냈지만 경솔하게도 그 달콤한 맛을 그녀에게 알려 주고 만 그런 애무 하나하나를, 그녀에게서 찾아낸 매력 하나하나를 알려 준 것을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조금 후에는 그런 것들이 그의 형벌을 가중할 새로운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158~159
스완이 오데트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기나긴 의심과 질투가 시작된다. 오데트가 정말 다른 남자(포르슈빌)와 그랬을까에 대해서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 부분은 마치 추리소설과도 같이 스완의 시선과 감정으로만 기술되기 때문에 작품을 읽어내려가는 우리 마음 속에는 정말 오데트가 바람을 피운 것인지, 아니면 스완의 집착이 나은 과장된 의심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스완의 사랑, 특히 이 부분을 읽을 때면 스티비 원더의 명곡 lately가 떠오르곤 한다. 음악을 켜고 가사를 들어 보자.
Lately, I have had the strangest feeling / With no vivid reason here to find / Yet the thought of losing you's been hanging / 'Round my mind
Far more frequently, you're wearing perfume / With you say no special place to go / But when I ask, "Will you be coming back soon?" / You don't know, never know
Well, I'm a man of many wishesHope my premonition misses / But what I really feel my eyes won't let me hide 'Cause they always start to cry 'Cause this time could mean goodbye
Lately, I've been staring in the mirror / Very slowly picking me apart / Trying to tell myself I have no reason / With your heart
Just the other night while you were sleeping / I vaguely heard you whisper someone's name / But when I ask you of the thoughts you're keeping / You just say nothing's changed
Well, I'm a man of many wishes / I hope my premonition misses / But what I really feel my eyes won't let me hide 'Cause they always start to cry 'Cause this time could mean goodbye, goodbye
Oh, I'm a man of many wishes I hope my premonition misses But what I really feel my eyes won't let me hide 'Cause they always start to cry 'Cause this time could mean goodbye
- Wonder, Stevie. "Lately." Fulfillingness' First Finale, Motown, 1974
스티비 원더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에서 wearing perfume은 더 구슬프게 다가온다. 앞이 보이지 않는, 연인을 바라보지 못하지만 짙어진 향수에, 달라진 말투에 아닐 거라고 고개 저어도 흐르는 눈물은 이별을 예감한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과도 같은 그 날, 이별하러 가던 길에 보았던 평소와는 다른 밤하늘, 달빛과 어색하게 섞인 가로등 불빛이 아직도 생생한 그 날, 그 풍경 속에 있던 나는 이제 풍경을 바라보는 관람자가 되었는데, 추억 속에 나를 바라보는 그러한 또 다른 '나'의 시선이 프루스트가 알려주고자 했던 잃어버렸던 시간을 되찾는 여정이 아닐까? 지나간 것들은 아름답다.
오데트는 (포르슈빌과 함께 있고 싶은 혹은 그래보이는 마음에) 스완에게 불만스러운 표정이나 말투를 대하다가도 어떤 날은 포르슈빌에게 자기 집에 들어오려면 스완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애정 어린 말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스완의 질투심은 이러한 오데트의 예측할 수 없는 변덕스러운 태도에 더 고조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순간이면, ...(중략)... 그가 오데트에 대해 품었던 온갖 끔찍하고 불안정한 상념들이 그의 눈앞에 있는 매력적인 육체와 하나가 되어 육체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중략)... 그는 문득 오데트 집의 램프 불 아래서 보내는 이 시간이 어쩌면 그 자체의 특별한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시간, ...(중략)... 만일 그가 여기 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포르슈빌에게 똑같은 안락의자를 내놓았을 것이고 ...(중략)... 오데트가 사는 세계는, 그가 그녀를 그곳에 두느라고 시간을 보내고, 어쩌면 그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무섭고 초자연적인 세계가 아니라, 어떤 특별한 슬픔도 발산하지 않는 현실 세계가 아닐까! 그가 ...(중략)... 바라보는 이 모든 물건들을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 물건들은 그의 몽상을 흡수하면서 그를 몽상으로부터 해방해 주는 동시에, 물건 자체는 반대로 몽상으로 풍요로워져 만질 수 있게 실현해 보여 줌으로써 그를 흥미롭게 하고, 그의 시선 앞에서 입체감을 띠며 동시에 그의 마음을 진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194~195
아무리 가까운 사람 혹은 가족이라도, 우리가 바라보고 상상하는 상대방의 삶은 관념적이다.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할 때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음악이 흐르고 카메라를 통해 보는 기분이 들곤 하지만, 실제 그의 삶은 단지 무미건조한 존재의 것이란 말을 하려는 듯, 프루스트는 '물건', 즉 사물에 대해 언급한다.
작품의 초반, 꿈에서 깨어나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데 사물에 대한 기억과 배치를 이용하는 장면이 있던 것처럼 사물은 현실 그 자체이며 관념의 반대지만 결국 관념이 솟아나는 원천은 사물 그 자체이다. 사물과 감성, 현실과 관념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아마도 프루스트는 스완에 빗대어, 몽상의 해방과 동시에 다시 몽상을 풍요롭게 해준다고 말한다. (사실 이런 해석은 어렵다. 내 해석이 틀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뭐, 정답이 없으니 틀리다는 말보다 다르다는 말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평온한 밤을 보낸 후면 스완의 의혹은 진정되었다. 그는 오데트를 축복했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그녀에게 가장 아름다운 보석을 보냈다. ...(중략)...
그렇지만 또 어떤 때는 고뇌가 다시 그를 사로잡아, 오데트가 포르슈빌의 정부임에 틀림없으며, 자신이 초대받지 못한 샤투에서의 야유회 전날 밤 불로뉴 숲에서 마부까지도 눈치챈 그 절망 어린 표정으로 오데트에게 같이 돌아가자고 애원하다가 허사로 돌아가 홀로 패배한 채 돌아가는 그의 모습을 두 사람이 베르뒤랭네 사륜마차 구석에서 보고 있었을 때 ...(중략)... 사니에트가 포르슈빌 때문에 베르뒤랭네에서 내쫓겼던 날과 똑같은, 그 반짝이는 심술궂고 앙큼한 눈길을 내리떴을 거라고 상상했다.
그럴 때면 스완은 그녀가 미웠다. "정말 나는 멍청해."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197
극과 극을 오가는 스완의 감정 상태는 위태롭고 갑갑하다. 베르뒤랭네에서 포르슈빌이 사니에트를 면박주며 쫓아낸 에피소드는 전에 소개된 부분인데, 그때 그를 거들고 함께 사니에트를 비웃던 오데트의 가증스러운 눈빛을 스완 자신에게 투영한다.
오래 전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 '적의(미워하는 마음)는 숨길 수 없다.'라는 말을 나는 종종 쓰곤 하는데, 그렇다. 뛰어난 연기자나 천성이 포커페이스를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끝까지 좋아하는 척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불현듯 자신을 싫어하는 표정이나 눈빛이 비춰진다면 혹은 그렇게 느꼈다면 얼마나 가슴 아플까? 게다가 스완처럼 예민하고 의심과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더 비극적인 일일 것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스완의 감정을 한참 읽고 있으면 불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러한 의심과 지나친 상상이 결국 의붓증이나 스토킹 범죄로 이어질 것만 같아 두렵고 위태로운 마음이 든다. 스완과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스스로 고립된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지금 자기가 무척이나 바빠 약속한 어떤 날에도 그녀를 보러 갈 수 없다는 편지를 써 보내는 것이었다. 그때 마침 그의 편지와 엇갈려 도착한 그녀 편지에는 만날 날을 연기하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는 그 까닭을 생각해 보았고, 그러자 다시 의혹이, 고통이 그를 사로잡았다. 다시금 불안에 빠진 그는 ...(중략)... 그녀 집으로 달려가 앞으로는 날마다 만나자고 요구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205
만일 의도적인 행동이었다면, 오데트는 뛰어난 심리학 전문가였을 것이다. 스완은 자신의 집착을 줄이면서도 오데트에게 일종의 위기감을 주기 위해 일부러 만나지 않겠다는 편지를 보내지만, 때마침 오데트도 만남을 미루려고 했다는 사실에 아무 소용이 없어지게 되자 만사 제쳐두고 그녀에게 달려가 만나지 않겠다던 결심을 번복한다. 상대를 시험하듯 일부러 모험을 무릅쓰는 일은 언제나 리스크가 따른다.
그리하여 오데트는 며칠만 지나면 전처럼 다정하고 온순해진 그가 화해를 청해 오리라는 것을 확신했으므로, 그의 마음을 언짢게 하거나 그를 화나게 하는 일조차 꺼리지 않게 되었는데, 그녀 사정에 따라 그가 가장 집착하는 사랑 표현마저도 거부하곤 했다.
어쩌면 그녀는 ...(중략)... 스완이 그녀에 대해 얼마나 진지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중략)... 비록 그녀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해도 자기 자신에 대해 그가 얼마나 진지했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했을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205
스완의 사랑이라는 이 병은 너무도 확산되어 그의 모든 습관이나 모든 행동, 그의 생각이며 건강이며 수면이며 생명이며 심지어는 그의 죽음 뒤에 그가 소망하는 것에까지도 밀접하게 섞여 그와 하나를 이루었기 때문에, 스완 자신을 거의 전부 파괴하지 않고는 그로부터 제거할 수 없었다. 외과 의사 말대로 그의 사랑은 더 이상 수술할 수 없는 병이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210
그렇다. 스완에게 사랑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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