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에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삶의 의미를 찾아 데이비드 스터 조던이라는 과거 인물의 행적을 따라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로 흥미로운 사색과 반전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인생은 시간 때우기
이 모든 것은 화자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비롯된다.
이유가 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중략)...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중략)...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더 중요하지는 않아."
나 역시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에 잠기곤 했는데, 상념의 끝에는 언제나 공허함과 허무감뿐이었다. 마치 카프카가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곳만을 향하고 괴델이 결코 증명할 수 없는 참을 증명했던 것처럼.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던 파르메니데스와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던 비트겐슈타인처럼. 아마도 그래서 도스또예프스키는 무신론자 끼릴로프의 최후를 우스꽝스럽게 그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허무한 세계의 원리를 적나라하게 까발린 실존주의조차 유행 지난 헌 옷처럼 허무하게 시들어갔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로서 유한한 세계, 유한한 삶에 길들여져 있다. 무한을 생각한다는 것은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보르헤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무한을 생각하는 것이 두려워 끝없이 펼쳐지는 무한한 직선 대신 원(circle), 끝없는 윤회로서 마침내 안도했다.
나는 여전히 틈만 나면, 무한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많은 것을 꿈꾸고 희망하다가도 무한이 떠오르면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 된다. 내가 이룬 것들과 지금 상황에 만족하다가도 무한이 떠오르면 만족할 것이 없다. 삶이 꽉 찬 듯하다가도 무한이 떠오르면 텅 빈 기분이 든다. 이처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기분과 모든 것을 이룬 것만 같은 기쁨이 뒤섞여 하루에도 몇 번 씩 감정이 뒤바뀌곤 한다. 무한을 생각하면, 인생은 한순간 의미를 잃어버린다. "인생은 시간 때우기" - 언젠가 친한 형의 아버님께서 종종 말씀하셨다는 이 명언을 처음 들었을 때는 웃어 넘겼지만, 지금도 무한이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함께 떠올라 입가에 맴돌곤 한다.
화자는 그것을 <혼돈>으로 표현한다. 화자는 자신의 삶이 혼돈 속에 무의미한 것이 아닌, 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기를 바라면서, 우연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사건 - 평생 오지를 찾아다니며 수집하고 이름 붙인 물고기들이 지진 때문에 망가지고 사라져 가는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고 묵묵히 한 마리 한 마리에 명찰을 붙였다는 사건을 알게 된 후, 데이비드의 삶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모든 것은 사라질 거야. 다 부질없는 짓이지.
(나 역시)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허무감에서 해방되기만을 갈망해왔다. 마치 해방된 척 스스로 세뇌시키며, 오늘도 지금도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매달리지만 매일 밤 잠들 무렵, 허무감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또 하루가 밝아오면,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감추고 또 달린다. 그렇게 달리기 시작하면 이내 멈추고 싶은 욕망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무슨 일을 하든 열정은 허무감으로 식어 내린다.
(나 역시) 부럽다. 데이비드의 끈질긴 열정이. (나 역시) 궁금하다. 무엇이 그를 끝없이 달리게 만드는지.
화자는 하찮은 자신의 인생도, 매사 묵묵히 정진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데이비드의 삶처럼 가치있을 수도 있음을 찾으려 한다. (나 역시) 나의 모든 시답지 않은 도전들이 운좋게 뽑기에 걸린 성공 한 가닥으로 말미암아 갑자기 위대한 열정으로 포장되고 뒤늦게나마 (혹은 억지로) 의미를 부여해주기 바란다. 그렇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계속 꿈을 꾸는 것처럼, 보잘것없는 결과를 자기기만으로 살짝 고쳐 쓸 뿐이다.
데이비드는 grit의 선구자라고 한다. 묵묵히 정진하는 투지, grit. 그런데, 데이비드가 grit으로 성공했다고 나 역시 grit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여기에 맹점이 있다. Grit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말은 그 확률에 내가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현실은 다분히 그래 보인다.
★여기부터 스포일러 특히 주의!!!★
★책 읽을 사람은 여기까지만★
책이 반쯤 넘어갈 무렵, 분위기는 반전된다. 데이비드가 제인 스탠퍼드를 독살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들추기 시작하더니 이내 데이비드가 열정적으로 신봉한 우생학과 미국의 합법적 불임 수술에 관해 이야기한다.
과히 충격적이다. 묵묵히 자신의 꿈을 찾아 수행하던 그녀의 롤모델이 한순간 살인 용의자가 되더니 이내 히틀러 같은 부류의 인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11장에 이르러 화자는 대체 언제, 왜 미미한 생물을 찾아 이름 붙이던 데이비드가 미미한 (열등하다고 분류되는) 존재들을 박해하는 정반대의 사람이 되었는지 추적해 본다.
사다리!
인간을 맨 위에 두고 동물과 식물, 미생물로 이어지는 계층 구조에 따라, 과학적 근거 없는 맹목적 믿음으로부터 어떤 것이 어떤 것에 비해 더 고귀하고 중요하다는 착각의 신념화. 더 나아가 (화자의 놀라운 통찰력으로서) 그것이 혼돈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혼돈의 두려움. 무한을 향한 공포
보르헤스는 무한에 관한 두려움을 원으로 해결했는데, 양 끝 - 아이러니하게도 무한이라면 존재할 수 없는 '양 끝'을 찾아 이어 붙임으로써 눈에 보이는 유한한 원을 만들어 낸다.
혼돈은 무한을 상상하는 것과 같이 우리를 무력하고 허무하게 만든다. 엔트로피는 혼돈을 향해 가듯 세상은 무한한 공허를 향해 자꾸만 우리를 분해시키려고 하는데 오직 그 안에 질서만이 우리를 유한한 공간에 가두는, 이른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무한한 존재는 상상할 수 없는데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이다). 무한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너는 중요하지 않아.
화자는 자신을 평생 괴롭힌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그것은 혼돈이다. 중요하지 않고 의미 없는 삶은 공허요, 세계는 혼돈이다. 그와 같은 무력감에 데이비드는 자기기만으로 시간이 수놓는 자연의 계층을 맹신하며 우생학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무한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유한한 경계를 상상하는 자기기만뿐이다.
그러다 화자는 수용소를 겪은 메리와 (우생학이 낳는 괴물, 합법적 불임화를 당한) 애니를 만나면서 마침내 해답을 찾아낸다.
민들레!
무한한 관점에서 민들레는 (하찮을 수도 있지만) 중요하다. 서로 영향을 주며 모든 존재는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화자는 말한다. 과연? 무한으로부터 야기된 혼돈과 허무를 무한한 관점으로 풀어내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책과 어둠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 - 보르헤스
결말은 소제목(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강렬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류라고 불러왔던 것들의 상상이자 착각이다. 오류투성이 인간이 스스로 고귀하고자 꾸며낸 사다리의 일부였을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우월하게 여겨지려고 다른 동물의 행동을 폄하하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자기기만이다.
직관이 명백한 사실 앞에 무너져 내릴 때, 그것을 인정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복잡하고 기괴한 상대성 이론보다 얼추 잘 들어맞아 사는 데 지장 없는 뉴튼에 머물러 있다.
화자는 삶의 의미를 찾았을까? 마치 그런 것처럼 책은 마무리되지만, 나는 의심한다.
한동안 진지하게 무한을 사유하다 보면,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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