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전부 책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사람들이 지옥의 고통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난 후 천국에 대해서는 단조롭고 권태로운 광경밖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 인생에는 고통과 권태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오가는 시계추다.
리처드 도킨스가 개체란 결국은 유전자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는 입장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도킨스가 말하는 유전자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종족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결국 세계의 근원인 우주적 의지마저도 내적인 갈등과 고통에 시달리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는 결과로 귀착된다. 쇼펜하우어의 이러한 사상은 우주의 근원을 자애로운 인격신으로 보는 그리스도교의 사상과 철저하게 대립한다.
쇼펜하우어는 "이 세계는 존재할 수 있는 세계 중 최악의 세계"라고 말한다. 쇼펜하우어의 이 말은 "이 세계는 완전하고 자애로운 신이 만든 세계이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세계 중 최선의 세계"라는 라이프니츠의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이 세계는 신의 눈으로 보면 생각할 수 있는 세계 중 가장 좋은 세계라고 말했다.
그렇게 세계에 구애되지 말라. 원래가 세계는 무다.
사회는 불과 비교될 수 있다. 영리한 자는 적당한 거리에서 몸을 녹이지만, 어리석은 자는 불을 거머쥐려고 한다. 그는 불에 덴 후 춥고 외로운 곳으로 도망가서는 불이 뜨겁다고 징징거린다.
이렇게 거리를 두면서 삶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동안 대단한 일로 생각하면서 집착했던 것을 하찮은 것으로 보게 되면서 평온한 마음 상태에 진입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는 호라티우스의 시를 인용하고 있다.
소유하고 있던 세계가 사라지더라도 한탄하지 말라.
원래 세계는 무다.
세계를 소유하게 되더라도 기뻐하지 말라. 원래가 세계는 무다.
괴로움도 기쁨도 흘러가는 것.
욕망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고통이지만, 욕망에서 벗어난 순수한 관조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아름다움이다.
비극은 인생의 두려움과 비참함을 보여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극을 아름다운 것으로 경험하면서 기쁨을 느낀다. 비극에서 경험하는 아름다움은 숭고한 아름다움으로써 아름다운 꽃이나 여인의 아름다움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람들은 음악이 작곡가나 연주자 개인의 감정을 표현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음악은 천재적인 영감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비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음악이 작곡가 개인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에게 그렇게 큰 감동을 줄 수 없으며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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