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세이

힐링에세이 - 무한 ep4. 불완정성 정리

루벤초이 2021. 4. 25. 18:00

우리는 연속성과 영원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시간과 신의 속성으로 미뤄둔 채 눈을 감는다.

 

공간이 한 순간에 펼쳐진 전 우주라고 믿던 우리는

상대성으로 밝혀진 뒤에도 여태껏

시간도 공간처럼 이미 펼쳐진 전 역사로 떠올리지 못한다.

 

이미 지나 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평면으로 펼쳐진 정적인 공간처럼 바라볼 때,

현재는 오직 연속성으로만 이해될 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연속성 사이에, Ruben Choi (2021) 우리의 인식은 연속적인가, 불연속적인가?

칸토어와 괴델

무한 집합과 그 무한 집합의 부분 집합의 크기는 같다는 기괴한 사실을 밝혀 낸

칸토어는 가무한의 시대를 닫고 실무한에 걸음을 내딛으며 안타깝게도 정신병에 걸려 굶어 죽었고

우리의 사고 체계로는 참이지만 결코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있다는 숭고한 사실을 밝혀 낸

괴델은 완전무결한 세계를 꿈꾸던 인류를 겸손하게 만들었지만 불행히도 정신병에 걸려 굶어 죽었다.

 

무한, 그 알 수 없는 세계를 우리는 알 수 없다고 증명한 불완정성의 정리는

연속된 시공간을 살면서도 연속성에 대해 결코 알 수 없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한다.

 

작가들

보르헤스는 알 수 없어 두렵기만 한 연속성이 무한으로 압도되고 무한은 또 다시 영원 회귀나 꿈으로 해석되길 바라는 듯 하다.

노발리스는 기억할 만한 말을 남겼다. "주술사의 최고봉은 자신에게 주술을 걸어서 자기가 만든 환영마저도 저절로 출현했다고 여기는 주술사일 텐데, 그게 바로 우리가 아닐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온전한 신성)는 세계를 꿈꾼다. 우리는 이 세계가 공간적으로는 굳건하고 신비하고 가시적이고 편재적이기를 꿈꾸고, 시간적으로는 견고하기를 꿈꾸지만, 세계라는 건축물에 비이성이라는 영원한 실금이 나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에 우리의 꿈은 거짓임을 안다.
-보르헤스, 영원성의 역사 中 거북의 변모, (민음사, 2018), p186

그는 또 플로베르를 인용한다.

플로베르는 이렇게 쓴다. - 아직도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느데도, 결코 드러나지 않을 마지막 말을 짐작해 보려고 애쓰고 있다. 결론에 도달하려는 광란이야말로 광기 중에서 가장 무익하고 치명적인 광기이다.
-보르헤스, 영원성의 역사 中 부바르와 페퀴셰에 대한 옹호, (민음사, 2018), p193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연속성을 전제한다. 연속성 없이는 과거와 미래에 걸친 존재의 의의를 설명하기 어렵다.

 

세상이 불과 5분 전에 만들어졌다거나, 

시간은 실제로는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고 있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시간을 영원으로 가둔 작가의 작품이 있으니,

바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프루스트는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종이에 내려써 시간을 평면화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에서 글자 사이를 오르내리는 주인공처럼

나는 몇 권의 책으로 프루스트의 시간을 갖는다. 스완을 만나고 알베르트를 만난다.

그리고 내가 프루스트의 책을 읽는 시간은

여기 문장으로 남아 또다른 공간이 된다.

 

 

 

참고문헌

보르헤스, 영원성의 역사 (민음사, 2018)

 

영원성의 역사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 출간픽션과는 다른 매력의, 인간적인 보르헤스를 만나다 의심할 것 없이 현대의 가장 뛰어난 남아메리카 작가 ―[뉴욕 헤럴드 트리뷴] 보르헤스의 작품들을 처음 읽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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