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북톡

[리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루벤초이 2023. 12. 25. 22:45

***** 이 글에는 줄거리 및 결말 등 강력한 스포가 포함돼 있습니다. *****

 

For whom the bell tolls - by Generative AI

 

메탈리카보다 메가데스가 더 위대하다며 Countdown To Extinction 커버 앨범이 프린트된 메탈 티셔츠를 찢어질 때까지 입고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 내 방 한쪽 벽에는 메탈리카 흑백 브로마이드가 액자에 걸려있었고 미적분학 책 뒷 장에는 컬러 프린트 한 제임스 헷필드의 사진이 발라져 있었다. 물론 메탈리카 최애 앨범은 까만 화면에 뱀이 숨겨진 일명 '블랙' 앨범이었고, 전작 And Justice for All의 'One'은 당시 홍대 백스테이지*1에 단골 곡이었고 'Master of puppets' 같은 앨범은 지금도 최고 명반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에 비해 Ride the Lightning은 올드한 사운드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음반이었다. 그럼에도 잊을 수 없는 강렬한 리프의 creeping death나 밴드 카피곡으로 인기를 끈 faded to black 외에도, 저 유명한 for whom the bell tolls는 드라마틱한 구성과 인상적인 기타 리프 때문에 골라 들었던 곡들이었다.

 

지금도 듣고 있으려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따라가는 for whom the bell tolls는 어린 시절, 제임스 헷필드가 처절하게 외치던 'for whom the bell tolls' 문구가 뭐랄까 문법적으로(?) 멋있게 들려서 무슨 내용인가 했던 곡인데,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따온 반전 곡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 소설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지난번 리뷰한 헤밍웨이의 또 다른 유명한 소설 <무기여 잘있거라>처럼,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제목임에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이 참 많구나 싶었다.)

 

줄거리를 아주 간략히 요약하자면, 스페인 내전에 국제 여단의 폭탄 설치반으로 참전한 미국인 로버트 조던은 어떤 지역의 다리를 폭파하기 위해 해당 지역의 게릴라들과 며칠을 보내게 된다. 그곳에는 왕년에 잔인하고 냉철했지만 지금은 겁쟁이처럼 몸을 사리는 대장 파블로와 그런 그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여장부 필라르, 그리고 파시스트들에게 잡혀가 몹쓸 짓을 당하다 구출된 마리아가 있었는데, 로버트는 그런 마리아와 운명과도 같은 사랑에 빠지면서, 전쟁이고 뭐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마리아와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

그런 와중에 로버트는 자신이 듣게 된, 파블로가 벌인 끔찍한 학살 사건 - 마을 주민들을 선동하여 모두가 처형에 참여하게 했던 광기로 물든 학살 사건을 들으며, 본인들이나 적들이나 광기와 잔인함은 매한가지일 것이라고, 그래서 언젠가는 그런 것들을 자세히 쓸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그렇게나 잔인했던 파블로가 겁쟁이처럼 구는 것은 겉으로는 전쟁에 대한 회의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다리 폭파 작전이 너무도 무모해서 설령 다리를 폭파하더라도 이후 도망갈 방법이 없는, 자살 작전이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결국 그는 폭파 전날, 로버트의 다이너마이트 기폭 장치를 냇물에 버리고 혼자 도망가지만, 남아있는 사람을 잊지 못하고 결국 되돌아 온다. 그때, 파블로는 어디선가 두 명의 훈련된 게릴라를 데려오는데, 자신들이 탈 말이 부족했기 때문에, 임무 완수 직후 이 두 명을 쏘아죽이는 배신도 서슴치 않는다.

고뇌 속에서 어떻게든 작전을 번복해보려는 마지막 희망에 게릴라 한 명을 국제 여단 본부로 긴급 전보를 보내지만 엉망진창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정치 권력의 헛된 쳇바퀴 속에서 허공을 향한 허무한 외침이 되고 만다. 결국 로버트는 다리를 폭파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마침내 본인 또한 최후를 맞이하는데, 사실 이 소설은 700쪽짜리 두 권으로 나눠질 만큼 엄청난 분량이라, 그 안에 적들과 마주하는 순간이나, 엘 소르드의 전투 등 영화 같은 장면들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 또한 영화화되었고 앞서 언급한 메탈리카의 동명 곡의 뮤직비디오에서도 영화 장면을 차용하고 있다.

 

이 소설 또한 <무기여 잘있거라>처럼 제목만 유명한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인터넷을 찾아보면, 내용보다는 동명 영화나 메탈리카, 그리고 서문에 대한 언급이 많은데, for whom the bell tolls는 존 던(John Donne)의 Mediations 17의 일부 구절이라고 한다.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 John Donne, Mediations 17

 

요약하자면, 세상 모든 인간은 서로 연관되어 있어 그 누구의 죽음도 우리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작품은 오히려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이 무의미하고 허무하게만 느껴지는데, 서문과의 관계는 좀 더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오히려 메탈리카는 가사 중 "Crack of dawn, all is gone except the will to be" 구절에서 길 잃은 의지, 허무한 실존주의를 적절하게 짚어낸 듯 하다.

 

스페인 내전에 관한 작품으로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에서는 부조리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비관이 주를 이루는데 반해, 이 작품은 그러한 실제 상황과는 한 발 물러선 듯, 사랑이나 개인 감정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 점이 한편으로는 비판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데, 조지 오웰과 헤밍웨이 둘 다 실제 참전 경험을 토대로 했음에도 다른 결의 작품이 나온다는 것은 결국 헤밍웨이의 실존적이고 회의적인 본능적 시선 때문이 아니었을까? 세상의 부조리를 해결하는 수단은 사랑으로의 도피와도 같은... 그렇게 모든 사람이 개인 감정과 사랑으로 깊이 도피한다면, 세상은 좀 더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때마침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제2차 세계대전: 최전선에서>를 보며 인간과 역사에 대한 비극과 회의, 환멸을 느끼며, 다시금 그 이유를 들춰 보고자 폴 존슨의 <모던타임즈>를 꺼낸다.

 

Reference

*1 백스테이지: 지금은 인터넷에도 흔적을 찾기 어려운, 신촌에서 홍대 기차길 언덕으로 넘어가는 길 지하에 있던 어두컴컴한 음악감상실로, 한쪽 벽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프로젝터로 헤비메탈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옆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만큼 어마무시한 사운드가 울려 퍼지면,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 앉아 샤우팅 창법이나 그로울링을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부르며, 흡사 공연장처럼 신들린 듯 헤드벵잉을 하던 매니악한 공간이었다. 굴러 떨어지기 딱 좋은 비좁은 다락방 화장실이 있었으며, 신청곡도 받았는데, 몇 시간동안 머리를 흔들다가도 막상 집에 갈 때면, '이 노래만 보고 나가자'며 기본 30분은 더 머물던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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