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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ep.1 - 스완

루벤초이 2023. 1. 23. 14:09

처음 오데트를 만났을 때, 불혹의 나이에 이른 스완에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젊었을 때와 사뭇 다른 것이었다.

단지 사랑한다는 기쁨만으로도 만족할 줄 알고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강요하지 않는 이 불혹의 나이에는, 마음과 마음이 가까워진다는 것이 젊은 시절 막 시작되는 사랑이 지향하는 필수적인 목적은 아니라고 해도, 대신 관념의 강렬한 연상 작용으로 사랑에 결합되어 있으므로, 만일 이 마음의 접근이란 것이 사랑에 앞서 제시되기만 한다면 사랑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예전에는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기를 꿈꾸었지만, 나중에는 여인의 마음을 가진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사랑한다고 여기기에 충분해진다. ...(중략)... 삶의 이런 시기에 이른 사람은 이미 사랑을 여러 번 경험했으며, 따라서 사랑은 더 이상 그 고유의, 미지의 숙명적인 법칙에 따라, 우리의 수동적인 놀란 마음 앞에서 저절로 발전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에 도움을 주며, 기억이나 암시로 사랑을 왜곡하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23-24

 

마흔 나이에 이르는 동안 정말 사랑의 모양새는 달라지는 것일까? 왠지 사랑이란 젊을수록, 나이가 어릴수록 더 열정적일 것만 같고 반대로 나이가 들 수록 더 차분하고 잔잔하게 연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나이 때문일까?  나이 때문이 아니라, 나이 즉 시간에 비례하는 사랑과 이별의 경험치 때문이 아닐까? 결혼한지 오래 되어 아이들도 꽤 키운 나이 든 유부남이 어느날 불륜에 빠져 공금을 횡령하고 내연녀와 해외로 도피까지 했다는 얘기에 그 유부남이 원래는 첫사랑과 결혼해 바람 한 번 피운 적 없는 순진무구한 사람이었다는 가십거리가 더해지면, 우리는 '그렇지, 바람둥이였으면 적당히 놀다 끝냈겠지. 그리 무모하게 공금횡령에 해외 도피까지 했을 리 없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바람둥이라고 항상 가볍고 짧은 쾌락만을 좇을까? 작품에서 스완은 순진무구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연애 경험이 많은 바람둥이처럼 비춰진다. 그리고 그의 상태를 위와 같이 <사랑 따위 컨트롤 가능한 나이>로 묘사한다. 그리고 사랑에 초연한 그의 잔잔한 마음이 바닷가 모래성처럼 밀려드는 파도에 휘둘리며 무너져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스완이 오데트의 존재를 환기하게 되는 첫 번째 장치인 음악 감상에 대한 에피소드는 마치 무의지적 기억의 순간, 마르셀이 처음 홍차에 빠져들던 떄와 비슷하게 잡힐듯 말듯하다. 예술적 감각이 사랑의 감정으로 전개되는 과정에 대한 복선이다.

 

악절은 느린 리듬으로 여기저기 다른 곳으로, 고결하고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떤 뚜렷한 행복 쪽으로 그를 향하게 했다. ...(중략)... 그 후 악절은 사라졌다. 스완은 악절을 다시 볼 수 있기를, 세 번째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자 악절이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예전처럼 분명하게 말을 건네지 않았고 강한 쾌감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악절이 다시 필요했다. 마치 거리에서 얼핏 스친 여인이 그의 삶에 새로운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깃들게 해 그의 감수성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지만, 정작 자신은 이미 사랑하게 된 그 여인의 이름도 모르고, 다시 만나게 될지 어떨지도 모르는 것처럼.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47

악절은 평온하게 점차 권태로 빠져드는 스완의 삶에 새로운 활력소와도 같다.

결국 알아내지 못했던, 그렇게 잊혔던 악절을 그는 오데트와 함께 한 베르뒤랭 부인 집에서 다시 듣게 된다.

 

악절에는 너무도 특별하고 너무도 개인적인 매력이 담겨 있어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스완은 마치 길에서 보고 반했지만 만날 수 없어 절망하던 사람을 잘 아는 살롱에서 다시 만났을 때처럼 느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50

그는 악절을 그 자체로 (...중략...) 오데트와 그를 동시에 연상해 주는, 그들을 맺어 주는 사랑의 정표나 기념품으로 생각했다. ...(중략)... 그래서 그는 여전히 소악절밖에 알지 못했다. "그밖에 뭐가 필요해요? 이것이 우리 곡인데요." 하고 오데트가 말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61

그(스완)는 대신 뱅퇴유 소나타의 소악절을 쳐 달라고 부탁했다. ...(중략)... 스완에게서 소악절은 여전히 오데트에 대한 그의 사랑과 연결되었다. ...(중략)... 소악절이 물질적인 이익에 대한 걱정이나 모든 사람에게 가치 있는 인간적인 배려를 지워 버린 스완 영혼의 항 부분을 텅 빈 여백으로 남겨 놓았기 때문에, 스완은 거기에다 마음대로 오데트의 이름을 새겨 놓을 수 이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91-92

 

나에게도 그런 악절이 있었을까? TBD

 

(코타르)

스완이 그래비 씨(대통령)와 안다고 하자 의사 코타르는 큰 관심을 보이지만, 스완이 부담을 느껴 돌려 말하자 그는 스완의 말대로 과소평가하는데,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내 코타르는 스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그래비 씨의 초대 가치가 대단치 않으며 아주 흔해 빠진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스완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엘리제 궁에 드나든다는 사실에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되었고, 더 나아가 초대받은 사람이 지루하다고 고백한 그런 오찬에 가는 스완을 조금은 동정하기조차 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58

 

베르뒤랭 네 모임을 통해 스완은 점차 오데트와 가까워지면서 사랑의 감정은 서서히 쌓여간다. 스완은 매번 베르뒤랭네 모임 이후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주면서도 집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딱 두 번 차를 마시러 들르면서 관계가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저녁 7시 그녀와 헤어져 옷을 갈아입으려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마차를 타고 가는 내내 그는 이 오후가 가져다 준 기쁨을 억누를 길이 없어 "이처럼 귀하고도 맛있는 차 한 잔을 자기 집에서 대접해 줄 귀여운 여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되풀이했다. ...(중략)... 스완은 오데트의 집에 담배 케이스를 놓고 왔다. "왜 당신 마음도 두고 가지 않으셨나요. 마음이라면 돌려드리지 않았을 텐데."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67

 

기막히게 아름다운 표현이다. 언젠가 나는 오데트의 이 말을 패러디한 적이 있다.

 

라이터를 잃어버렸다. 담배도 잃어버렸다면 더 좋았을 것을.......

 

두 번째 방문에서 스완은 그녀의 얼굴에서 시스티나 성당 벽화 속 이드로의 딸 제포라 얼굴을 발견하고 강한 인상을 받는데, 그동안 오데트의 외적인 모습에서 욕망을 느끼지 못했다면, 오데트의 얼굴을 미술 작품 속 인물과 동일시하며 신비로운 감정으로 승화시킨다. 

 

우리도 누군가의 얼굴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얼굴을 발견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그 연예인을 떠올리곤 하는데, 연애 초반, 극장에서 잘 생긴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데이트 상대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거나, 나만의 3D 아바타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앱의 성공 포인트가 실제로 생긴 것보다 더 예쁘고 멋있게 나올 때 사람은 자신이 그렇게 생겼다고 믿으면서 더 큰 만족을 하는 것과도 같다.

 

이렇듯 스완의 오데트를 향한 감정 - 처음엔 별로였다가 점차 달아오르는 사랑의 감정선은 공감을 자아내는데, 가령 우리가 소개팅을 할 때 처음 만난 설레임이 두 번째 만남에서는 확 가라앉아 관심이 덜해진 듯 하다가도 이후 지속적인 만남에서 차츰 현실적인 호감이 상승하다가 마침내 어떤 계기를 통해 사랑이라고 확신하는 것과도 같다. 익숙한 감정과 습관적인 만남에 구속된 오래된 연인일지라도 결정적인 순간 없이는 결혼과 같은 중요한 이벤트로 도약하기 어렵고, 반대로 헤어짐에 있어서도 이별을 최종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있다. 가령 무더운 여름 날, 땀을 뻘뻘 흘리며 택시를 잡고 있는 연인의 뒷 모습에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한다든지 연인이 신고 온 무지개색 양말에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든지 하는 사연들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가득찬 감정과 결심이 마침내 의식적으로 넘쳐 흐르거나 폭발하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스완이 사랑을 확신하는 계기는 매일 만나던 오데트, 언제나 베르뒤랭네 집에 가면 만날 수 있던 오데트를 못 만나게 된 날이다. 오데트에게서 제포라의 얼굴을 발견하면서 특별한 호감을 느끼게 된 스완은 아마도 아직 그것을 사랑이라고 확신하지 못한 듯 하다. 혹은 오데트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못 가진 불안처럼도 보인다.

 

그렇지만 그는 단지 오데트에 대한 권태만이 아닌 때로는 그 자신에 대한 권태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했다. 오데트가 그를 쉽게 만날 수 있게 된 후부터는 그녀가 그에게 별로 할 말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중략)... 그래서 언젠가 그녀가 사랑을 고백하고 싶어질 날이 오리라는 그 소설적인 희망, 바로 그 때문에 그가 사랑을 하게 되고, 또 사랑을 지속해 나갈 그 유일한 희망마저도 그의 마음속에서 죽어 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그리하여 오데트의 너무 굳어 버린 도덕적인 모습에 진력이 날까 봐, 그 모습을 새롭게 하기 위해 갑자기 거짓 실망과 거짓 노여움이 가득한 편지를 써서는 저녁 식사 전에 보냈다. 그녀가 놀라 답장을 보내오리라는 걸 잘 알았고, ...(중략)... 그러면 그는 호기심으로 그녀 얼굴이나 말 속에서 이제껏 그녀가 마음속에 감추어 두었던 것을 바라보게 될 것이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72-73

 

요즘 말로 밀당(밀고 당기는 연애)과도 같다. 사랑은 더 사랑하는 사람이 불리하다고 하는데, 지금껏 스완의 시점으로만 서술되었기 때문에 오데트가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없으나, 나쁘게 해석하면 어장관리에서 밀당으로 넘어온 것 같고 좋게 해석하면 본인도 스완을 좋아했는데 스완이 그녀를 더 좋아하게된 것을 알아차린 것도 같다. 그즈음 그 일이 일어나는데, 스완이 베르뒤랭 집에 늦게 도착한 어느 날,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신을 반겨줄 줄 알았던 오데트가 그를 기다리다 떠나버린 것이다.

 

(스완이 베르뒤랭) 집 안에 들어갈 때면 그의 눈빛이 그도 모르게 너무도 큰 기쁨으로 반짝거려, 베르뒤랭 씨는 화가에게 "한창 몸이 단 모양이에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사실 스완에게는 오데트가 이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초대받았던 어느 집에도 없었던, 즉 모든 방에 가지를 치며 그의 마음에 끊임없이 자극을 가져다주는 일종의 감각 기관이나 신경 조직이 덧붙여지는 것이었다. ...(중략)... 그러나 한번은 언제나 어쩔 수 없이 함께 돌아가는 것이 조금은 울적해, 베르뒤랭 집에 가는 시간을 늦추려고 그가 볼로뉴 숲까지 여공 아가씨를 데려갔다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가 오지 않을 것이라 여긴 오데트는 이미 가고 없었다. 그녀가 살롱에 없다는 것을 알자 스완은 갑자기 아픔을 느꼈다. 그는 기쁨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온몸이 떨렸고, 그러나 그때 처음으로 기쁨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기쁨을 맛볼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런 확신으로 우리는 기쁨의 크기를 축소하기도 하고 알아보지도 못하는 법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74-75

 

스완은 오데트를 찾아 그녀가 가겠다던 카페로 향했지만 거기서도 오데트를 만나지 못하자, 마부를 시켜 온 카페를 다 뒤졌다. 그럼에도 오데트를 찾지 못하고 마부가 돌아왔을 때, 스완은 온통 오데트 생각 뿐이었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마치 무관심한 듯 다른 말을 꺼내기도 했지만, 막상 마부가 그녀를 찾지 못했으니 돌아가자고 하자 스완은 반드시 오데트를 찾아야 한다며 정신 나간 모습을 보이는 이 장면을 에우리디케 이야기에 빗대기도 한다. 광적인 야밤의 방황 끝에 마침내 포기하고 마차로 돌아가는 길에 스완은 오데트와 부딪친다. 

 

그녀는 그를 만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지 몹시 놀란 태도였다. 한편 그는 그녀와 만날 것이라고 기대해서가 아니라, 단념하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온 파리를 헤매고 다녔다. ...(중략)... 기쁨은 그 자체로부터 발산되었고, 기쁨 자체가 그가 두려워하던 고립을 꿈처럼 사라지게 하는, 눈부시게 빛나는 진실을 투영하고 있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83

 

아름다운 작품을 논하는데 사용하기엔 저속한 표현이지만, 이 장면은 '있을 때 잘해', '잡은 물고기 소중한 줄 모른다' 같은 말들과 일맥상통한다. 상대방을 소유하려는 욕심은 그다지 좋은 점이 없는 감정이면서도 어쩌면 본능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일반적인 감정이다. 하물며 스완의 경우처럼 이미 소유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면, 욕구는 더 커진다. 어디까지 사랑이고 어디부터가 집착(소유욕)인지 확연히 구분할 수 없지만, 사랑과 소유욕은 비례관계 혹은 시너지 관계가 있는 듯 하다. 스완은 마차에서 오데트 옷 위에 흐트러진 카틀레야를 바로 잡아 주는 야릇한 연출 속에서 오데트와 함께 밤을 보내게 된다.

 

상대방 여인이 까다로운 경우 - 또는 우리가 그렇다고 믿는 여인의 경우 - 그런 여인을 소유하려면 두 사람 관계에서 어떤 뜻밖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되므로, 마치 스완이 처음 카틀레야를 만져 준 일이 그러했듯, 그만큼 그런 소유는 새로운 쾌락이 되는 것이다. 그날 밤 스완이 몸을 떨면서 소마한 것은 카틀레야의 커다란 연보랏빛 꽃잎 사이로 나오려고 하는 그 여인에 대한 소유였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87

 

이후 스완은 매일 오데트의 집에 방문하고 사람들이 보는 데서도 키스를 할 만큼 그녀에게 푹 빠져 버린다. 그렇다면 스완이 사랑하는 오데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작품에서 스완의 사회적 지위부터 교양, 감정이나 생각까지 전지적 시점에서 묘사되는 반면, 오데트의 사회적 평판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감정조차 숨겨져 있어 오직 스완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로만 엿볼 수 있다.

"(베르뒤랭 부인의 말) 스완하고 자면 어떻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그럴 수 없다고 우겨 대는 거에요. 스완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그가 아주 수줍어하고, 그래서 자기도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주눅이 든다는 거에요. 게다가 그녀는 그를 그런 식으로는 좋아하지 않는다나 봐요. ...(중략)... 오데트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말아요. ...(중략)... 오데트는 매력적인 여자에요."
"...(중략)... 단지 오데트가 정숙하지도 지적이지도 않다고 말하는 거지."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76

몇 년 전, 그가 오데트를 아직 알지 못했던 무렵, 사람들로부터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을 생각하고는 ...(중략)... 틀림없이 오데트를 두고 한 말로, 그녀가 매춘부이며 누군가의 첩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95

어느 날 그녀와 단둘이서만 식사를 하려고 베르뒤랭 부인에게 몸이 불편해서 가지 못하겠다는 편지를 써 보내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다음 날 베르뒤랭 부인이 괜찮으냐고 묻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말을 더듬으며, 거짓말한 데서 오는 슬픔과 고통을 그녀도 모르게 얼굴에 나타 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날 밤 몸이 불편했다고 말한 데 대해 이런저런 세부적인 것들을 지어내 주워 섬기면서, 애원하는 시선과 비통한 목소리로 자신의 거짓말을 용서해 달라고 비는 것 같았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96

 

자유분방했던 과거를 숨기고 180도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주변에 널려, 등장인물만 우리나라 사람으로 바꾸면, 게시판에 단골 등장하는 가십거리 같기도 하다. 특히 오데트가 베르뒤랭 부인에게 거짓말을 했을 때 나타나는 무의식적 행동은 훗날 역으로 오데트가 스완에게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처럼 작품에서 어떤 부분들은 뒤에 중요한 사건들과 연결되기도 하는데 실로 방대한 양의 에피소드와 인물들이 등장함에도, (비록 각각의 장면들이 서로 다른 무게감을 갖더라도)  어느 하나 그냥 얘기한 것이 없을 만큼 모든 대화와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 하다. 한마디로 굉장하다.


스완은 예술을 이해하는 탁월한 심미안을 갖고 있었는데,  오데트를 미술 작품에 투영하거나 뱅퇴유 소나타 악절을 이해하는 등 내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위대한 작가로 알려진 베르고트와도 친분이 있을 만큼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해왔다. 그처럼 예술을 사랑하는 스완이 어느 날 자기 집에 방문한 오데트에게 예술에 대해 가르치려고 했지만 평소 예술보다는 가십거리에나 관심 있던 그녀가 지루한 내색을 하자 오히려 예술은 허황된 것이라며 깎아내리는데, 자신의 일상과 소중한 것들을 저버릴 만큼 사랑에 빠져버린 스완은 모습은 오히려 예술에 심취한 예술가의 면모가 보이기도 한다.

 

그녀가 예술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사랑에도 환멸을 느낄까 두려워 말하지 않았다.
사실 오데트는 스완을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중략)... 그러나 돈에 대한 무관심이나 누구에게나 친절한 태도, 그리고 자상함에는 감탄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99

점점 더 천박한 여자들과 함꼐 있기를 원하면서도, 점점 더 세련된 예술 작품에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이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김희영 역, 민음사(2012)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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