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북톡

[리뷰]단테의 신곡 지옥편

루벤초이 2021. 5. 6. 21:36

그 어느 때보다 정의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드는 시절이다. 우리는 양쪽으로 나뉘어 서로를 헐뜯지만 정작 비난 받아야 할 자들은 우리가 싸우도록 선동하고 기만하는 위선자들이다. 오늘, 단테가 지옥의 불구덩이에 쳐박아 버린 그들의 선조들을 다시 떠올려, 그들의 죄 위에 쏟아져 내릴 무서운 고통을 부르고 이 세계의 끝이 모든 것의 끝인 것마냥 파렴치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오만함이 심판 받기만을 바랄 뿐이다.

구렁, RubenChoi(2021) - 깊은 동굴 안, 깊게 패인 골짜기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시퍼런 연못

지옥

우리가 지옥을 상상할 때 두려워지는 것은 선험적인 - 즉,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지옥의 개념과 살아오면서 체득한 고통/공포의 무의식적 연계 때문이 아닐까?

700년도 더 된 단테의 신곡이 여전히 생동감 넘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을 읽을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의 세계가 새롭게 반영되기 때문이다. 선한 자와 악한 자, 수많은 사연들이 해결되지 못한 채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어 이제는 무엇이 죄인지마저 혼란스러운 시대에, 단테는 인간의 삶을 지옥에서 연옥, 천국으로의 여정으로 펼치고 그 안에 선과 악을 체계화하여 어디로 갈 것인지 가늠하게 해준다. 극 중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에게 안내 받은 것처럼, 우리는 단테에게 싦의 길을 안내 받는 셈이다.

 

신곡 읽기

신곡은 읽기 어려운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신곡의 내용이 다양한 역사와 인물들, 시대적 배경, 그리스 신화 등 광범위한 분야를 어우르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처음 읽을 때는 주석을 찾느라 작품을 읽는 것인지 주석을 읽는 것인지조차 헷갈릴 만큼 어렵게 느껴졌지만, (3년 후) 두 번째 읽을 때 그 사이 주석을 보지 않아도 알고 있는 내용이 많아졌고 또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은 대충 넘어가면서 훨씬 큰 재미를 느꼈다. 그리고 5년 후, 이번에 다시 읽을 때는 인상적인 부분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생동감있게 다가올 만큼 여유로웠는데, 그래서 고전은 읽고 또 읽어야 재미난 것이다.

신곡을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는 어렵게 쓰여진 평론들과 수많은 연구들 때문일 것이란 생각도 드는데, 학자들이 모여 어렵고 고상한 말들로 토론하는 것을 보면 내용을 알기도 전에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과도 같다. 겉에서 보면 어렵게 보이던 것이 막상 들여다 보면 쉽고 재미있는 고전들이 굉장히 많다. 아니, 사실 웬만한 고전은 쉽고 재미있다. 예를 들어, 밀턴의 <실낙원>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듣던 작품이라 선뜻 손이 안 갔었는데, 막상 읽어 보면 롤플레잉 게임 애니메이션을 글로 읽는 듯 하고 도스트예프스키의 작품들은 심오한 철학/종교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시종일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막장 드라마 같은 급진적 전개로 손에서 책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물론 정신을 집중하고 몇 번은 읽어야 이해되는 보르헤스의 작품들이나 특별한 인내심과 장투(시간의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작품들도 있고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이해할 자신 없는 <율리시스> 같은 작품들이 있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고전은 쉽고 재미있으며, 쉽고 재미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랑 받는 것이기도 하다.

신곡은 단테가 어느 날 문득 산 채로 저승에 떨어지는데, 천국에 사는 단테의 첫 사랑 베아트리체의 부탁으로 림보(죄를 짓지 않고 죽었으나 교인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지 못한 영혼들이 머무는 곳)에서 온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며 영혼들과 대화를 나눈다. 지옥, 연옥, 천국이 각각 33곡으로 되어 있고 서곡 1편을 더해 총 100편에 이르는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나이가 33이라는 점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각 곡들이 3연체 운율을 갖췄고 이것은 삼위일체를 뜻한다고 하는데, 번역본을 읽은 나로서는 운율에 대한 것은 잘 모르겠다.)

단테가 신곡을 쓴 시대적 배경도 자주 다뤄지는데, 쉽게 말하자면 교황을 중심으로 정치적으로 나뉜 두 집단의 정치 싸움에 휘말린 뒤 패배하여 떠도는 신세에서 세상을 개탄하며 쓴 작품이다. 그래서 동시대 사람들도 많이 등장하며 지옥 이곳 저곳을 채우는데,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에 교황을 그려 넣어 복수한 것처럼 예술가들의 복수는 작품과 함께 영원히 남는다.

단테의 신곡에서도 단연 관심을 끄는 것은 지옥편이고 거기에 등장하는 지옥문, 아케론 강과 카론, 림보,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우골리노 등 끔찍하고 자극적인 유명한 내용들이 있는데,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로댕이 30년 넘게 제작한 지옥문처럼 수많은 예술작품으로 거듭났다. 9개의 원으로 구성된 지옥의 구조 또한 유명한 미술 작품으로 그려졌으며, 유명하지 않은 구절 중에서도 종종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 넘치고 역동적으로 묘사된 인상적인 부분들이 많다.

나를 거쳐 고통의 도시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길 잃은 무리 속에 들어가노라.
정의는 높으신 내 창조주를 움직여,
성스러운 힘과 최고의 지혜,
최초의 사랑이 나를 만드셨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들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3곡 (열린책들, p.24)

지옥문에 새겨진 글귀는 압도적인데, 거대한 지옥문 위에 깔린 짙은 먹구름 속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외침처럼 다가온다. 마침내 모든 희망을 버리라는 명령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죄인의 영혼은 얼마나 참담한 심정일까?

어느 날 우리는 재미 삼아 랜슬럿이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읽고 있었는데
우리 둘뿐이었고 아무 의혹도 없었어요.
그 책은 자주 우리 눈길을 마주치게
했고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는데,
오직 한 대목이 우리를 사로잡았소.
그 연인이 열망하던 입술에
입 맞추는 장면을 읽었을 때, 나에게서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이 사람은
온통 떨면서 나에게 입을 맞추었지요.
그 책을 쓴 사람은 갤러해드였고,
우리는 그날 더 이상 읽지 못했지요.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3곡 (열린책들, p.47)

파올로와 프란체스카(파올로의 형수)의 금지된 사랑 에피소드는 마지막에 돌려 말하는 표현이 압권이다. 1300년대 작품임에도 현대의 감성처럼 세련된 표현이지 아니한가? (작가가 누구인지 까먹은) 어떤 노랫말에, 기차 플랫폼에서 연인을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햇살이 눈부셔 눈물이 났다>던 에둘러 표현한 글귀에 감동했던 적이 떠올랐다.

그러나 지옥편 대부분의 내용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 있었던 일로, 정권 전쟁에서 패해 포로가 되어 두 아들, 두 손자와 함께 탑 속에 갇혀 굶어 죽은 우골리노 백작 에피소드를 살펴보자.

그 고통스러운 감옥에 약간의 햇살이
스며들었을 때, 나는 네 아들의 얼굴을
통하여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답니다.
괴로운 마음에 나는 손을 물어뜯었는데,
그들은 내가 먹고 싶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곧바로 일어서서 말하더군요.
<아버지, 저희를 잡수시는 것이 우리에게
덜 고통스럽겠습니다. 이 비참한 육신을
입혀 주셨으니, 이제는 벗겨 주십시오.>
그들을 슬프게 하지 않으려고 나는 진정했고,
그날도 다음 날도 우리 모두 말이 없었지요.
아, 매정한 땅이여, 왜 열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넷째 날이 되었을 때 가도가
내 발치에 길게 쓰러지면서 말하더군요.
<아버지, 왜 나를 도와주지 않습니까?>
그는 그 자리에서 죽었지요. 그리고 그대가
나를 보듯, 나는 닷샛날과 엿샛날 사이에
세 자식들이 하나씩 쓰러지는 것을 보았소.
이미 눈이 멀어 버린 나는 그들을 불렀는데,
고통 못지않게 배고픔도 괴로웠답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그는 눈을 부릅뜨며
마치 개의 이빨처럼 뼈로 된 듯 억센
이빨로 그 처참한 머리통을 물어뜯었다.

그토록 잔인하고 끔찍한 사건을 이렇게나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개인적으로 지옥문과 더불어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33곡 우골리노 백작에 관한 부분이었다. 특히 <이 비참한 육신을 입혀 주셨으니, 이제는 벗겨 주십시오.> 구절에서는 절망적으로 울부짖는 외침이 실제로 들리는 것만 같고 배고픔을 못 이겨 죽은 자식을 뜯어 먹는 장면을 우회한 <개의 이빨처럼 뼈로 된 듯 억센 이빨로 그 처참한 머리통을 물어뜯었다.> 구절에서는 앙상하게 뼈만 남은 채 비참하게 들썩대는 우골리노 백작의 어깨 너머로 게걸스럽게 살을 물어 뜯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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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곡별 정리

작성중

20곡에서는 넷째 구렁에서 점쟁이와 예언자들이 머리가 등 뒤로 돌아간 벌을 받는다.

23곡에서는 여섯째 구렁에서 위선자들이 무거운 납으로 된 옷을 입고 다니며 예수를 못 받은 가야파가 땅바닥에 못 박혀 있다.

24곡에서는 일곱째 구렁에서 뱀에 물린 도둑들이 불타 재가 되는 즉시 되살아나는 끔찍한 모습과 (마치 밀턴의 실낙원 같은 분위기의) 악마들과의 조우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25곡에서는 도둑질로 죽은 죄인들을 통해 뱀이 사람으로, 사람이 뱀으로 변하는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는데 오비디우스의 변신의 지옥편과도 같은 모습이다.

26곡에서는 사기와 기만 죄의 구렁에서 오디세우스를 만나는데 아킬레우스를 유인한 것과 트로이 목마를 두고 그리 여긴다.

28곡에서는 사람들을 갈라치게 한 자들이 그에 상응하는 형벌로 사지가 찢어지는 벌을 받고 있는데 요즘 우리 시대의 정치인들이 두려워해야 할 대목일 것이다.

 

 

 



참고문헌

 

신곡 지옥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지옥, 연옥, 천국을 통한 영혼 구원의 노래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의 대표작으로 1만 4,233행으로 이루어진 장편 서사시이다. 총 1만 4233행으로 된 이 대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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